흑과 백

문학동네 100호 특별부록 <아뇨, 문학은 그런 것입니다>에 실린 권여선 작가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느냐 쓰느냐'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하고, 그렇다면 환골탈태하겠다고, 사는 걸 버리고 쓰는 걸 택하겠노라 결단할 뻔한 적도 있다. 결국 사는 걸 좋아해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는 사는 일과 쓰는 일이 다정하게 양립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는 동안은 쓰지 못하고 쓰는 동안은… Continue reading 흑과 백

2019년과 2020년 사이

2019년에는 단편소설 <베를린까지 320킬로미터>, <자매의 탄생>, <또라의 알고리즘에 대하여>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 지금까지 두 편의 소설을 더 쓰고 있는데 쉽지 않다. (내년 여름에는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올해 썼던 나의 첫 소설들이 앞으로 나에게 초심을 깨우쳐 줄 것 같아 기록해두려 한다. <베를린까지 320킬로미터>는 갑자기 찾아온 친구의 죽음을 겪은 나와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썼다. 소설을… Continue reading 2019년과 2020년 사이

안개로 누룩을 만들어 삼키면

겨울비가 내리는 휴일. 우리는 슈판다우를 지나 국도를 타고 굽이굽이 서쪽으로 달렸다. 목적지인 베어벤은 버스도 기차도 다니지 않는 아주 작은 동네라서, H와 나는 가까스로 카풀을 구한 것에 감사해야 했다. 사진 1. 산다우 페리 / Bild 1. Fähre Sandau L9번 국도는 중간에 강을 경계로 끊어져서 페리를 이용해야 했다. 강 위로 작은 페리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큰 트럭과 우리를 운송했다. 두꺼운… Continue reading 안개로 누룩을 만들어 삼키면

웃긴 토마토

어느 날 아침이었다. 김강이 일어나서는 방금 자신이 생생하게 본 것이 있다 말했다. 나 자기 등 어깻죽지 뒤에. 응. 토마토가 자라는 거야. 뭐라고? 너무 웃겨. 계속해봐. 걱정되니까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가 김구란거야. 김구라 말투로, 이거 한 달에 한 번은 면도를 해 줘야 하는데, 보는 사람은 두 번 해주고 싶죠? 그러는 거야. 아, 웃겨. 그래서? 나는 뭐 하고… Continue reading 웃긴 토마토

여덟 번의 주말

주말에는 온전히 글을 쓰고 싶어서 일의 효율을 계산하며 산 지 8주가 지났다. 그러니까 주말은 이야기에 온전히 침식해야 하니까, 일상의 걱정이나 불안을 가져가면 안 되니까, 미리 정돈된 월화수목금을 살아두는 것이다. 이건 주말에 누가 놀자고 하면 베를린에 없다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는 정도로 중요했다. 토요일 아침 새벽부터는 미루어두었던 글을 읽느라 혼자 부산을 떨었다. 고작 8주를 학업과 문학을… Continue reading 여덟 번의 주말

충분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로 나는 작년 5월, 갑작스러운 공황장애 발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정신질환에 별다른 편견이 없어서 그런지 다행히 치료가 빨랐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약물도 상담도 0에 천천히 수렴한다. 공황장애는 반드시 정신과의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인지행동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앞으로 삶이 또 버거워지면 주저 없이 또 진료실에 방문할 것이다. 상담실에서, 진료실에서 눈물을 쏟았던… Continue reading 충분

다른 사람을 상상하며

가끔 임신을 상상한다. 아마 여린 사람이 태어날 거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납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겠지. 우리가 오랜 시간 고민했던 문제를 혼자 다 떠안으려고 굴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도. 자유를 추구하지만 남들과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지 못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하루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떨 때에는 고양이 다섯 마리를 임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왠지… Continue reading 다른 사람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