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서랍장에서 2018년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다이어리에는 그해 벌어졌던 사건들이 얇은 펜으로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의 빈틈이 없을수록 연약하게 읽혔다. 글씨도 낯설었다. 왜 낯설을까 생각해보면 이제는 그렇게 예리한 펜은 쓰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얇은 펜은 종이를 죽죽 후벼파는 것 같고- 뭐 또 그럴 것까지 있나 싶어, 언젠가부터는 끝이 동글동글한 볼펜으로 흘려 쓰게 되었다. 개성도 없고 성의도 없어 보이지만 마음은 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의 다이어리는 담백하다. 일정으로 채워지지만 허무하지는 않다. 외려 플래너 한구석이 하얗게 비어 있을 때, 어떤 번뇌로 괴로워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그만큼은 편안했구나 짐작하고 만다.

상념과 집착의 기록을 그만두고 30대에는 형식과 내용을 갖춘 글을 탐구하고 싶다. 이 탐구는 나에게 탐진치(貪嗔癡)의 탐이라고 우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이 탐욕으로 얽매여 산다 해도 나는 이 솟은 욕심이 그저 반갑다. 사느라 바빠 소원해졌지만 결국에는 다시 만난 소꿉친구처럼 익숙하고 또 감사하다. 덕분에 세상에는 어떤 형식이 존재했는지,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깨달은 만큼 성실하기가 참 어렵다. 때론 무엇을 위한 수행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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