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와 거미집

화병을 잃어버린 이후로는 집에 생화를 두고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게 작년이었나. 이 블로그에 ‘화병의 꽃이 시들고 줄기가 썩어가는 섭리를 지켜보는 게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라던가 하는 적당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보다 이번에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미가 계속 눈에 걸렸다. 화병이 있던 화장실 천장에는 초대형 거미가 종종 진을 쳤는데 몇 달을 내버려 두다 하루는 큰마음을 먹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 모서리를 시작으로- 온 집안 천장의 거미집을 치우며 주말을 보냈다. 김강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진공청소기 주둥이로 허연 거미줄을 흡입하면 나는 아래에서 뜨거운 모터를 들고, 저기저기- 아니 거기 말고 저기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집 진공청소기는 성한 곳이 없어서 어르고 달래려면 누군가는 안고 있어야 했는데, 그 무게도 무게지만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얼굴에 직격해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김강의 뒤통수를 올려다보고만 있는 게 슬금슬금 질리기 시작했다. 김강이 거미집 치우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에는, 아니 내가 왜 계속 이걸 들고 있어야 해? 우리 바꾸자 하고 모터보다도 크게 소리쳤다. 나는 사다리 위에 올라갔고, 밑에서 나와 비슷하게 모터의 열기에 두 뺨이 발그레해진 김강을 내려다보았다. 봐, 그거 들고 있기 힘들다니깐. 그러자 김강은 응 무겁네, 우리 어서 끝내버리자 하고 나머지 손으로 사다리를 꼭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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