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하루

Untitled (15)

2017년 3월을 기억하며 / Erinnerung vom Mai 2017

 

다시 318호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일 년 가까이 잠가 놓았던 사물함을 열자 2018년도 다이어리가 나왔다. 아프기 전까지 대학에서 썼던 다이어리. 다행히 커터칼이나 칼판 등, 쓸만한 도구가 온전히 남아있었고 나머지는 아틀리에를 방황하다 결국 친구들이 나눠 가졌다고 했다. 돌려준다고는 하지만 기약 없는 말을 들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쭈그려서 사물함 정리정돈을 했다. 그러다가 다이어리에 이어, 작년에 몰두했던 설계도면이 나왔다. 꼬질꼬질한 종이 한 장이 참 반가웠다.

점심에는 학교 뒤뜰에 나가 도시락을 먹었다. 작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특히 먹는 걸 우습게 알았고 학교생활에 몰입할수록 곡기를 끊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아플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침에 붉은 콩밥을 짓고, 인스턴트 떡갈비를 구워 유리통에 담았다. 노란 겨자와 검은깨를 뿌리니 점심에 도시락을 열었을 때도 맛있어 보였다. 다음엔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 봐야지. 요즘의 나는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우려서 가지고 다닌다. 

학교 뒤뜰에는 T와 자주 이야기하던 벤치가 있다. T는 주로 조용히 담배를 피웠고 나는 끊임없이 모든것에 대하여 불평했다. 오늘은 혼자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허전했다. 자꾸 벤치에 톡톡하고 빨간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T가 학교 뒤뜰의 모든 나무 이름을 알았던 게 생각이 났다. T가 한참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었는데.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흘려들었던 게 후회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좋았다. 이제는 T를 그리워할 수 있는게 좋다.

시간이 계속 흐른다. T는 어떤 약속이든 가장 먼저 장소에 도착하는 사람이었다. 지각하는 걸 본 적 없다. 강의실에서도 교수보다 먼저 도착해서는 오른쪽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거기는 내 자리다. 

이제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고, 독일어가 더 유창해졌고, 자전거 타고 왕복 20킬로미터 통학을 하며, 점심시간에 부지런히 도시락을 까먹는 나를 T는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느새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 너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 오늘은 무척 보고 싶은 날이었다. 

 

Untitled (3)

2017년 7월을 기억하며 / Erinnerung vom Juli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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