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붙이고 싶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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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하케셔 막트 정류장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어떤 출구로 나갈까 고민하는 야곱의 아들의 멍한 얼굴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타고 있던 지하철이 출발해 버려서 인사하지 못했지만 내일 만나면 어제 널 우연히 보았다고, 하케셔엔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과 그다음 날에도 새로운 말할 거리는 넘쳐났고 결국 그 짧은 순간은 화젯거리도 못되고 밀려났다. 끝까지 나는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거리에서 우연히 본 날은 동물원 역 앞에서 어디론가 느리게 걸어가는 야곱의 아들을 발견한 날이다. 나는 원래 반대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열심히 뛰어서 야곱의 아들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몇 걸음 같이 걸었다. 내가 옆에서 튀어나온 걸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날 비키니 베를린 쇼핑몰에서 보이는 동물원의 원숭이들을 구경했다. 

세 번째는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그의 옛연인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것이다. 우리는 마침 그 다음 주에 보기로 했었는데 눈앞에서 그 사람이 지나갔다. 커피를 마시다 나는 카페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크게 이름을 불러서 그 사람을 세웠다. 나를 알아본 그의 옛연인은 반가워했다. 본래 포츠담에 사는 그 사람은 -베를린에 온 건 정말 오랜만이고 지금은 자신에게 찰나의 순간이라 나를 우연히 만난 게 너무나 신기하다, 고 했다. 나도 무척 반갑다고 했다. 그 다음 주에 우리는 포츠담에서 함께 탁구를 하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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