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캐비닛에 떨어진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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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 해물전과 김치전을 굽는 Y와 친구들

Herbst 2018, Y und ihre Freundinen. Wir haben zusammen die Meeresfrüchte-Jeon und Kimchi-Jeon gekocht. hmm sehr lecker!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르코르뷔지에 알레르기를 친구 Y 덕분에 극복했다. 르코르뷔지에는 스무 살에 알게 된 프랑스 건축가로 딱히 그의 사상이나 건축에 억하심정이 있다기보다- 한국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새벽까지 억지로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들이켜야 했으니. 그때 그 사람들이 르코르뷔지에가 아니라 렌조 피아노를 들먹였다면 필시 렌조 피아노 알레르기가 생겼을 것이다.

Y는 르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연작의 회심의 2호- 베를린 르코르뷔지에 하우스에 살았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르코르뷔지에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모든 게 아니꼬웠다. 창 하나 없이 막혀있는 복도도, 입구에 그려진 해괴한 모듈러 시스템 부조도, 알록달록한 테라스 색깔도 너무 싫었다. 거기서 그러면 안 되는데. 거기 사는 사람 앞에 두고 ‘너무 싫다’고 운을 띄우며 한참 욕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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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피우는 걸 좋아하는 Y

Y mag sehr gerne Räucherstäbchen zu verbrennen.

 

성격 좋은 Y 덕분에 우리의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에는 Y가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요리해 먹었다. 찜닭과 해물전, 김치전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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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oig _ Concrete Cabin (1996)

 

하루는 Y가 집 근처에서 멧돼지 가족을 보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주변에 산이 있고 인적이 드물며 밤에는 어두워서 동물들이 이동하기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Y는 에피소드형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나면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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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요리를잘한다

Sie kocht gut.

 

 

그런데 이제 이 베를린 르코르뷔지에 하우스에 갈 일이 없어졌다. Y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나도 짐 정리를 도왔다. 어쩐지 이번 가을엔 베를린을 떠나는 친구도, 다시 돌아오는 친구도 많다. 그래서 이사할 때 손을 빌려주겠다고 예의상 말을 하는데 진짜로 부른 사람은 Y밖에 없었다..! (농담)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던 날은 비가 많이 왔다. 둘이 수다 떨며 일을 하다가 테라스에 앉아서 가끔 쉬었다. 아파트 근처에 있는 낮은 산에서 물안개가 내려와 어느새 테라스 전경의 절반을 잠식했다. 화창한 날은 멀리 솟아있는 베를린 티비타워가 보이는데 그날은 안개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저 티비타워를 넘어 동쪽으로 더 가면 우리 집이라고 매번 질리지도 않고 했다. 이제 Y에게 그리워질 풍경이란 생각을 하니 덩달아 마음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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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테라스 풍경

auf der ihren Terrasse mit schönen Augenblick auf die Stadt.

Da wir einmal erblickte zufällig eine Sternschnuppe!

 

이삿짐 정리를 어느 정도 하자 Y가 오코노미야키를 해주었다. 영리한 Y는 일꾼의 당이 떨어질 때마다 음식을 공급했다. 오코노미야키가 정말 맛있어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배가 불러서 잠시 넋을 놓고 테라스에서 보이는 물안개와 베를린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비행운 같은 게 하얀 선을 그리며 아파트 쪽으로 느리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보통 비행운은 화창한 날에 생기기 마련이라 신기해서 자세히 보니 비행기보다는 높이가 낮았다. 드론이라고 하기엔 비행이 저돌적이었다. 미확인 물체는 아파트 가까이 날아왔을 때 라임 색 빛을 내며 타오르더니 지붕 위로 넘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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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억은 있지만 운세는 기억이 안나는 타로카드

Tarotkarten, die wir lasen aber den Analyse sofort vergessen geworden sind.  

 

우리가 본 게 유성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정황상 그게 유성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성이 아니라면 폭죽이어야 하는데. 아파트 너머엔 폭죽을 터트릴 만한 높은 건물이 없다. 소리도 없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유성을 검색한 후에 짧게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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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oig _ Concrete Cabin (1992)

 

다음 날,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어제 유성을 보았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겨울학기가 시작되기 전이니 별다른 일이 없어서 유성을 본 건 꽤 재미있는 일에 들었기 때문이다. Peter Doig는 가끔 이 콘크리트 캐비닛 근처에 멧돼지 가족이 출몰하고 유성이 떨어지는 걸 알고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날의 경험은 Doig의 그림처럼, 그야말로 현실이 잠시 비틀린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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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차도 잘 끓인다. 이사하면서 나에게 스리랑카 차를 선물했다.

향도 좋고 마실 때마다 유성이 생각나서 좋다.

Y koch Tee auch gut. Als sie auszog, schenkte sie mich Tee aus Sri Lanke.

Die schmeck sehr gut und werde ich mich jedesmal an die Sternschnuppen erinn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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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Y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Herbst 2019, die Daumen sind gedrückt für ihre neue Herausforde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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