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씨의 몸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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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보이는 화병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관리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희한하게 어떤 꽃은 아직 시들지도 않았는데 줄기는 썩기 시작해서 하얀 곰팡이가 핀다. 화병이 불투명한 패턴으로 가리고 있다면 며칠은 외면할 수 있을 텐데. 이 화병은 투명해서 고인 물에 끈끈한 즙이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이 그대로 보이니 세면대에 쏟아 버릴 수밖에 없다. 비릿한 악취는 언제 맡아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지금은 욕실 화병에 여러 싱그러운 꽃이 거쳐 가지만, 한때는 가꾸던 집안의 식물이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말라 죽던 시기가 있었다. 그 중엔 3주년 선물이라 아끼던 화분과, 학교 목공소에 놓였다가 마지막에 나에게 온 작은 꽃도 있었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기능이 모두 떨어져 그렇게 화분이 마르는 줄도 나중에 알았다. 검게 비틀어진 줄기에 거미줄이 하얗게 엉켜있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파릇하게 생기 있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던 시간이 있었으니 나에게는 이 작은 화병이라도 잘 돌보는 게 어느새 중요한 건강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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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베를린 컨템포러리 갤러리 KW에 들렸다가 내 화병과 맥락은 다르지만 투명한 유리를 매개로 개념을 표현하는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Anna Daučíková.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2018년도 Schering 재단의 예술상을 받았다.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으로 오랜 시간 안나 씨는 “mental body” 개념을 스스로 정의하고 탐구했다. 안나의 팔꿈치, 가슴, 손가락, 입술, 혀, 원피스의 기하학적 패턴이 매끈한 유리의 표면에 닿아 눌리는 것을, 그리고 그 마찰음을 표면의 반대편에서 관객이 관찰하도록 의도한 게 섬세한 하나의 움직임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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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llomorphing (2017), Anna Daučíková

 

특히 2017년 작품 On Allomorphing 가 강하게 인상이 남았는데 아무래도 건축과 신체, 정신을 엮어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콘크리트 외벽의 결, 규격에 맞추어 정갈하게 끼워진 유리창, 공간을 나누기 위한 다양한 벽의 배치, 젠더를 해석하기 위해 채워진 책장, 그 책장 사이에 꽂히는 야시시한 하이힐이 양쪽의 화면에서 조화로운 리듬으로 등장했다. 중앙 화면에는 재단된 유리를 내려놓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신체와 정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힘이 있다. 안나 씨의 작업은 젠더의 개념을 남성 여성의 이분법이나 그사이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주목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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