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인식

건축학과 학부생을 위한 구조역학 입문서 Vorlsungen über Statik und Festigkeitslehre (Walter Mann, B.G.Teubner Stuttgart 1997)를 읽다 멋진 문장을 발견했다. 

“…Diese Abstraktheit stellt eine Schwierigkeit für den Lernenden dar. Einer Stütze z.B können wir nicht ansehen, welche Kräfte sie trägt. Kräfte erkennt man nur an ihrer Wirkung.” 이런 힘의 추상성은 학생들에게 이해의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둥이 어떤 힘을 받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힘은 오로지 작용에 의해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Seite 17)

한참을 곱씹어보며 위의 문장이 매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를 고민해봤다. 아마도 추상으로 시작해서 인식으로 끝나기 때문이 아닐까? 추상을 인식하라니! 웬만한 지성으로는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상상력을 부풀려 문장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뒷장을 넘기면 계산 문제를 풀기 위해 샤프를 들어야 하니 어떻게든 버티려고 갖은 꼼수를 부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사건의 추상성은 때때로 우리에게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일상이 어떤 욕망을 받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욕망은 오로지 말과 행동에 의해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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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인물과 그의 욕망이 자연스레 엮이는것 이라던 김연수 선생님의 한 산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건축과 소설의 구조는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닐까? 

건축은 중력을 비롯한 바람, 눈, 지진이 누르는 힘을 구조체가 상쇄 시켜 안정적인 내부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류가 더 넓고 높은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 건축구조역학이 발전했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현대로 넘어올수록 세련된 방식으로 가볍고 우아한 공법이 가능해졌다. 구조체가 미를 갖추며 그 기능을 다 할 때, 우리는 건축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찬양하는데 나는 소설을 쓰며 비슷한 종류의 희열을 발견했다.

소설의 주요 구조는 인물과 시간으로 짜인다. 복합적으로 해석 가능한 인물일수록 매력적이다. 사건을 통해 어떤 방어기제가 발동할지,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가 그려지면 나는 좋은 구조체를 발견했다고 믿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역학구조가 포함된 실기시험에서 어떤 트러스 구조를 사용할 것인지 계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을 이해하는 것, 그것을 추상의 형태로 끄집어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말이다. 

이야기 속의 사건과 그에 파생되는 갈등은 마치 건축 구조물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는 작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조체에 가려진 광원이 만드는 것이다. 인물을 사건에 개입시키면 알아서 소설 안에서 구조체 주변에 그늘이 진다. 나는 그늘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느껴지는 대로 거창할 것 없이 묘사했다.

반대로 건축과 소설의 다른 점은 균열에 대응하는 법이었다. 건축의 균열은 주거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은? 대부분의 소설가는 자비가 없다. 소설 속의 균열은 점점 커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인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정서적 불균형은 이야기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끝에 인물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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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건축가 렌조 피아노 선생님의 사무소에서 설계한 그리스 아테네의 스타브로스 재단 문화센터는 방문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아 있을 정도로 멋진 건축이다. 완공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아테네 관광객들에게 명소가 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유명해질 거라 예상된다. 솔직히 스타브로스 만큼 마음을 뒤흔든 작품은 없었다. 둘러보는 동안 기술과 예술이 완벽하게 조율된 시스템 속을 걷는 듯한 황홀함에 몇 번을 주저앉았다. 시내 전경이 보이는 테라스에 올라갔을 때 설계자의 천재적인 영리함에 압도되어 눈물이 찔끔 나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는 많이 불안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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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제곱미터의 태양 전지가 설치된 지붕을 받드는 얇은 기둥은 눈앞에서 보면 지름이 컸다. 두세 사람이 팔을 벌리면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다. 지붕 하중을 이 기둥과 케이블이 나누어 상쇄하고 있는데 그 추상적 해법이 간결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지는 구조체였다. 특히 네 개의 케이블이 교차하는 중앙에 끼워진 고리는 스타브로스의 작은 액세서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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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 전방에 개방된 공원의 잔디 위에서 주민들이 단체로 태극권을 배우고 있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도 그렇지만 렌조 피아노 선생님의 사무소가 도시에 제안하는 건축문화예술은 신사적이라 더 멋지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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