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아들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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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점심을 대충 때우기 위해 공원에서 유리로 된 락앤락 통을 열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던 모든 야채와 과일이 그대로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대충 뿌려둔 소금 덕분에 적당히 간이 뱄다. 초라한 풀때기 잡탕 같아 보여도 과즙, 야채즙의 향연이었다. 오도독오도독 당근을 씹으며 풀밭을 뛰노는 개를 구경했다. 개의 활기찬 뒷발에 잔디가 탄력 있게 누웠다가 고개를 세운다. 여름이라 잔디도 힘이 나는 것일까. 주인이 던지는 나뭇가지를 따라 개가 날렵한 곡선을 그리며 달렸다.

그 공원의 잔디밭에는 지난겨울부터 주저앉아 여름이 된 지금까지 새로운 잔디가 자라지 못한 부분이 있다. 겨울학기 때 파빌리온이 임시로 설치되었던 곳이다. 파빌리온은 몇 주 만에 철거되었지만, 그 기본 골조를 세웠던 땅은 파헤쳐져서 새로 풀이 자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실험적인 비정형 구조를 구현한 파빌리온이라 그 터도 예사롭지 않은 형상이다. 마치 유에프오가 내려앉아 누군가를 납치하고 떠난 것만 같은 자국이 그 공원에 남았다. 아마도 내년이면 없어질 테지만.

나는 그 파빌리온을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피가 흐르는 북독일 출신의 멋진 목수가 런던에서 온 영리한 박사생의 프로젝트를 도우느라, 추운 날 많은 땀을 흘렸었다. ‘내일’ 파빌리온을 철거해야 해서 아쉽다고 말하던 그 사람을 여름이 된 지금까지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년 여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파빌리온의 터가 아쉬우면서도, 파헤쳐진 땅을 채워줄 새로운 잔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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