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뮤겔호 나들이

구글 지도에서 ‘뮤겔’이라는 호수를 우연히 발견했다. 특이하게 g가 두 개다. 베를린 외곽에 이런 큰 호수가 있었나 싶어서 줌을 당겨보니 호숫가에 ‘상수도 박물관’이라는 흥미로운 곳이 있었다. 19세기 말에 건설되어 베를린 시민의 식수를 담당하는 세 번째 상수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옛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개방하는 모양인지 방문 후기가 많았다. 별 다섯개를 걸고는 시설에 볼거리가 많다며 들뜬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김강에게 다음 주말에 이곳으로 드라이브를 가보자고 제안했다. 딱히 김강이 운전 연습을 하고 싶어서 몸살을 앓는 게 보기 괴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김강이 콧노래를 부르며 예약한 렌터카의 조수석에 탔다. 다행히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었다. 그새 김강의 운전 실력이 많이 늘어서 나는 아이유의 메가 히트곡 메들리를 잔잔하게 틀고 창밖 구경을 했다. 아이유는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데다가 귀여울까. 김강과 나는 아이유를 좋아한다. 아이유가 질리면 에프엑스를 틀었다. 일렉트릭 쇽. 다른 곡으로 넘어가면 따라부를 수 없어서 난처했다. 우리의 아이돌 메들리가 2010년 초반대에 머물러져 있는걸 이번 드라이브에서 확인했다.

 

imm000_0A

 

호기롭게 상수도 박물관 앞에 도착했지만, 입장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예약한 단체만 투어가 가능했다. 내가 제안하는 일이란 대부분이 그렇다. 우리는 빠르게 포기하고 다시 자동차에 올라탔다. 공공주차장에 차를 대고 10분을 걷자 호수와 인공으로 조성된 모래사장이 보였다.

 

imm007_7A

 

imm008_8A

 

사진을 보고 알았다. 그러고 보니 서로가 선물해 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김강이 입은 티셔츠와 바지는 내가 작년 생일에 선물해줬고, 내가 입은 원피스는 3년 전에 김강이 피땀 흘려 번 번역료로 사준 것이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특별한 날에 아껴 입는 원피스다.

 

imm003_3A

 

우리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몸을 좀 태우다가 그늘이 서늘한 어느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 카누를 타는 커플, 호숫가를 산책하는 토플리스 할머니, 강아지, 큰 개, 여자아이들이 사뿐히 주고받는 프리스비를 보고 있자니 잠이 솔솔 왔다.

 

imm004_4A

 

적당히 쉬다가 또 구글 맵을 켜서 이 동네에 어떤 카페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평점 좋은 카페가 딱 하나 있었다. Cafe Gerch라는 곳인데 아이스커피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아기자기한 온실 컨셉의 가건물 안에 앤틱 가구와 식물이 잘 어울렸다. 우리는 더워서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넣은 커피를 마셨다. 작은 인공수조에 풀어놓은 잉어를 구경하고 있는데 느릿느릿 한 할아버지가 오셔서 합석했다. 내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할아버지가 김강의 호구조사를 했고, 나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 목소리를 키워 천천히 알려드렸다. 옆 테이블의 백인 가족이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