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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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동네에서 중고 자전거를 샀다. 바디에 ‘페가수스’라고 커다란 마크가 적혀 있을 뿐이지 핸들과 바퀴, 안장, 체인이 모두 다른 상표인 그야말로 잡동사니 시티바이크다. 겉으로는 투박해 보여도 막상 안장에 오르면 묵직한 균형이 잡히면서 뚝심 있게 앞으로 나가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200유로로 타협적이었다.

아기자기하거나 레트로하지 않은 자전거를 10분 만에 골랐다고 김강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역시 나는 예쁜 것보다는 실용이다. 예쁘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비싼 물건은 가져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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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전거가 무거워서 천천히 길들여야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 몸이 자전거에 맞춰 조금 커졌다. 지금은 계단 30칸 정도는 거뜬히 들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자전거를 들쳐메고 계단을 오르면 정신 나간 애들이 옆에서 휘파람을 불거나 ‘힘이 장사인 자매’라고 비아냥거리는데, 나는 한국어로 ‘아, 존나 무겁네!’ 하며 인상을 팍 쓴다. 걔들도 욕이라는 걸 아는지 수그러든다. 여차하면 자전거를 번쩍 들어 던져야지. 그런 마음이다. 요즘은. 자전거는 이제 나에게 이동수단이자 호신 무기다. 정말 누군가에게 던진다면 살인 무기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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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며 시간을 좀 보냈다고 지금은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단골 카페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소설을 쓰다가 이후에는 서늘해질 때까지 공원에서 이어 쓰고는 했다. 그나저나 저 날 왜 저렇게 옷을 입었지? 귀여워 보이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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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자전거 도로는 참 매력적이다. 검붉은 자전거 트랙만 깔려 있으면 무조건 자전거 우선이다. 자동차도 사람도 눈치 보며 자전거를 피한다. 어떤 도로 포장재 보다도 자전거 바퀴가 안정적으로 굴러서 패달을 구르는 재미가 있다. 가끔은 너무 신난 나머지 들떠버려서 다른 바이커에게 욕먹은 적도 있었다. 안 죽으려면 조신하게 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아찔할 정도로 정신을 놓을 때가 있다. 의외로 비가 올 때보다 날씨 좋은 날이 위험했다.

자전거를 사고 이동반경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통학 거리는 왕복 20km로 총 80분 정도 걸린다. 집에서 알렉산더 광장까지는 이제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문제는 알렉산더 광장에서 운터덴린덴을 따라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가는 길이다. 베를린의 중심을 관통하는 이 유서 깊은 대로는 몇 년 전부터 공사 중이다. 그 때문에 부분부분 자전거 도로가 끊겨서 차도로 달려야 한다. 게다가 베를린에 방문하는 투어리스트라면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 하는 핫스팟이라서 사람도 많고 대형관광버스도 항상 줄을 서 있다. 이때 우회전하려는 대형차를 조심해야 한다. 독일어로는 ‘Todeswinkel’이라고 하는 죽음의 삼각지대 때문이다. 대형차의 백미러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각도가 있기에 옆 차선의 트럭이나 버스가 우회전하려고 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은 유튜브로 찾아보면 좋다. 나는 처음에 아이들 교육용 영상을 먼저 보고 교통법을 숙지했다.

추천영상 :

(Der tote Winkel – Ein Lehr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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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운터덴린덴에 흐르는 도시 중심지의 활력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파리저 광장에서 터지는 것을 느낀다. 이 광장엔 늘 어떤 집단이건 간에 신고된 집회가 열리고 그걸 통제하려고 경찰차가 대어져 있다. 관광객은 모든 것을 관광한다. 집회도, 브란덴부르크의 문도, 경찰도, 마차에 메인 커다란 말도, 그 틈을 파고들어 지나가는 자전거도.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베를린 전승기념탑까지는 통학 길에서 가장 좋아하는 숲길이다. 티어가르텐의 산책로는 늘 거대한 나무에 의해 그림자가 드리워서 서늘하다. 바로 옆의 찻길에서 나오는 소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다. 나는 이곳에서 일부러 속도를 늦춘다. 시야를 멀리 두고 평소엔 잘 마시지 못하는 초록을 눈에 담는다. 가끔 조깅하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기울인다. 저 사람도 오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생각하며 나는 캠퍼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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