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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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여러 의료적 도움을 받고 있어서 심한 진통에 시달리지 않지만,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에 어쩔 줄을 몰라 매일을 방황했다. 장례식에 다녀와 나는 조금씩 그에 대한 글을 썼다. 어떤 메모지에는 아주 짧은 찰나의 기억을 갈겨썼다. 고마웠던 일, 신세 졌던 일. 그리고 언젠가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빌려주고 싶었던 나의 두 손에 대하여 적었다.  그의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워서 ‘그의 호탕한 웃음’ 이라는 문장을 공허하게 썼다. 메모들이 불어나 하나의 덩어리가 되려고 할 때 나는 단편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나의 첫 단편소설이다. <베를린까지 320킬로미터>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절규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문단은 앞으로 그 친구가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를 위해 썼다. 그때의 나처럼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를 느끼는 누군가가 보고 힘을 내주기를 바랬다.

<베를린까지 320킬로미터>를 탈고하고 탄력을 받아 나는 바로 두 번째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소설은 분량이 더 많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일주일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제목은 <자매의 탄생>으로 이 소설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썼다. 그녀의 새로운 삶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여성성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매의 탄생>을 탈고하고 기뻤던 것은 어느새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건축 설계만이 인생의 목표였던 고지식한 나에게 새로운 분야가 펼쳐졌다. 그냥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바꾸니 편해졌다. 거창한 건축가가 아닌 밥벌이로 설계하는 사람. 소설가가 아니라 취미로 소설 쓰는 사람. 그냥 저냥 하루하루 사는 사람. 생각만 해도 스스로가 너무 멋져서 한동안 끓어오르는 자기애를 누르느라 힘들었다 (지금 읽고 비위 상하셨을 분들 죄송합니다). 그저 한순간 놓아버릴 뻔한 시간을 이제는 좋게 추억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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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글쓰기”

  1. 여기에 코멘트를 달아도 되는지..
    ‘그때의 나처럼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를 느끼는 누군가가 보고 힘을 내주기를 바랬다.’
    눈물이 핑 돌았네요. 저에게는 이미 너무도 훌륭한 작가 처럼 느껴져요.
    주은 씨 일상을 응원해요.
    주은의 소설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제게도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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