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기 (끝)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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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각오한 일이지만 한국 여행은 참 외로웠다. 모든 살림살이가 빠진 빈집에서 나는 캐리어의 짐을 풀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혼자 지내셨던 401호. 팔리기만을 온 가족이 기다리지만, 부동산으로 가치가 없어 산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바닥의 먼지를 훔치던 중, 주방 벽 위에 달린 스피커로 관리사무실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날은 삼일절이었다. 민족적으로 자랑스러운 날이니 꼭 태극기를 게양하라는 것이었다.

태극기는 이 집에 오바야.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벽에는 벽지가 군데군데 들려있었다. 냉장고조차 없어서 지나치게 조용했다. 덕분에 가끔 이웃집 소리가 넘어왔다. 밤 열두 시에 어느 집 아빠가 퇴근하고 놀아주는지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은 어른 남녀의 고함과 쿵쿵거리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그 사이에 아이가 있는지 애원하며 매달렸다. 누군가 쾅 하고 복도로 나가는 소리를 끝으로 잠잠해졌다. 복도식 아파트는 서로 비밀이 없는 것이다. 현관과 엘리베이터를 이어주는 긴 복도에서 옆집의 밥 짓는 냄새가 솔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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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템플스테이에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태양 경배라는 요가를 했다. 서글픈 마음을 꾹 잠그는 마법의 약도 먹었다. 새벽에 드문드문 깨긴 했지만 그래도 잘 잤다. 아침을 먹고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 벽은, 지난 십오년 동안 우리 가족이 제사를 지내던 벽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장손인 사촌오빠의 뒤에서 눈치껏 절을 하곤 했다. 원래 여자는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사촌 언니들은 뒤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들보다 한참 어렸으므로 남자들과 나란히 설 수 있었다. 조상님이 이 벽에서 우리 남자 가족들의 정수리를 보았을 걸 생각하니 우스웠다. 결국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조상님에게 그렇게 절을 했으면 로또까지는 아니더라도 화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벽에 머리를 대고 아빠의 형제들이 절을 하던 텅 빈 거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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