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기 (끝) 빈집

  수 없이 각오한 일이지만 한국 여행은 참 외로웠다. 모든 살림살이가 빠진 빈집에서 나는 캐리어의 짐을 풀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혼자 지내셨던 401호. 팔리기만을 온 가족이 기다리지만, 부동산으로 가치가 없어 산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바닥의 먼지를 훔치던 중, 주방 벽 위에 달린 스피커로 관리사무실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날은 삼일절이었다. 민족적으로 자랑스러운 날이니 꼭 태극기를 게양하라는… Continue reading 한국 여행기 (끝) 빈집

한국 여행기 (3) 섬진강, 재첩국은 배가 부르지 않아

인천공항 E 터미널 앞의 수많은 피켓 속에서 아빠를 한눈에 알아봤다. 눈물을 쏟지 않고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어 기뻤다. 어이구 못 알아보겠다 야, 아빠는 정말인지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 역시 아빠의 사소한 변화를 알아챘지만 애써 눈을 돌렸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항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헤맸다. 이상하게 전혀 고단하지 않았다. 아빠가 차키를 누르자,… Continue reading 한국 여행기 (3) 섬진강, 재첩국은 배가 부르지 않아

한국 여행기 (2) 비명이 끊이지 않는 호숫가

  서울에는 온종일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 호수가 있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잠실 놀이동산이다. 인공섬에서 자유로스윙이 부지런히 인간에게 무중력을 선사할 때마다 허공에 짜릿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이에 질세라 롤러코스터도 안전바에 인간을 매달아 검은 터널 안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잠실에 롯데월드가 있었지. 엑스엑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Continue reading 한국 여행기 (2) 비명이 끊이지 않는 호숫가

한국 여행기 (1) 미세먼지 주의보와 안양 아파트촌

헬싱키 공항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출국 심사를 하려고 늘어진 줄에 어떤 조그마한 동양인 여학생이 유독 눈에 띄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운반 수레에 쌓아 놓고는 초조한 눈으로 심사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총머리를 한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리고 총명해 보였다. 나 역시 저렇게 홀로 독일행 비행기를 탔었는데... 벌써 그것이 5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독일 땅에서… Continue reading 한국 여행기 (1) 미세먼지 주의보와 안양 아파트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