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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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칠년 유월의 폴더에서 찾은 이 사진은 여름의 초입이라고 믿기 어려운 스산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 이 사진은 베를린 바샤우어슈트라세 역(S Bahnhof Warschauerstraße)에서 나오면 보이는 풍경으로, 바람길을 따라 다리 밑으로 광활하게 철로가 놓여있는 곳이다.

세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다 아래로 눈길이 떨어지면 승강장으로 지하철이 들어온다. 바샤우어 다리(Warschauer Brücke)위에는 역에서 쏟아지는 바쁜 발걸음과 그들에게 약을 팔려는 은밀한 이들이 섞여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Something About Us가 흘러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거리공연을 하는 소리가 노면전차의 자동문이 닫히는 순간 사라진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두꺼운 구름 아래로 짙은 황갈색의 철근 구조물이 우뚝 서 있다. 기중기가 한 대만 세워져 있어도 그 존재가 뚜렷한데, 무려 열 대의 기중기가 버티고 있으니 실제로 보았을 때의 압도감은 실로 대단했다. ‘얼마나 요란한 것을 짓기에 이 야단인가!’ 싶은 것이다. 과거에는 주차장이던 부지에 큰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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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팔년 팔월 즈음에는 이곳을 우연히 지나다가 쇼핑몰의 기본 골조를 보았다. 정면의 입구에서부터 긴 데크가 뻗어져 있었다. 그 데크는 역 앞의 다리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끝과 다리가 맞닿은 곳에 펜스가 쳐져 있었다. 약 십 미터 높이의 이 거대한 데크에는 설계자 혹은 건축주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완공이 되면 펜스는 걷어질 테고, 많은 사람이 몰에 들어가기 위해 바샤우어 다리를 넘어 새로운 데크 위를 걸어갈 것이다. 단면도에 쇼핑몰과 바샤우어 다리를 연결하는 얇은 두 줄의 선을 그으며 설계자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Untitled

 

화려한 그래픽 조감도와 쇼핑몰 입점 광고. SATURN이나 H&M같은 대형 브랜드의 현수막은 이미 옆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앞으로 몇십 년은 보아야 하는데 쫓아내고 싶은 불청객같다.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건축과 도시라는 독일어 기반 웹사이트에 이 공사 현장을 주시하며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https://www.architektur-urbanistik.berlin/index.php?threads/eastside-mall.109/

한마디씩 훈수를 두는 글 중에 가장 웃겼던 것은, 스타트렉의 스팍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둔 계정이었다. :

‘Hat jemand für diese Fassadengestaltung etwa Geld bekommen!?’

(이따위 파사드 디자인으로 돈을 받은 사람이 있어?)

 

Untitled (2)

 

근처 관광명소인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에서 영감을 받은, 이 거대한 쇼핑몰의 이름은 ‘이스트 사이드 몰'(East Side Mall)이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벤 반 베켈 (Ben van Berkel)의 유엔스튜디오(UNStudio)에서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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