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Untitled (68)

 

두 사람이 동시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난 3년을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내뱉은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이야. 내가 너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는 거야.”라는 말이 야속해서 다른 한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각자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세우며, 다음 말을 고민했다. 하얗게 질린 입술이 얄밉게 움찔거린다. 그 두 사람은 지난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머릿속에서 서운이가 운행하는 감정 열차가 폭주하면 사람들은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어른은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얼굴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 근육은 입꼬리다. 잘 알려진 일은 아니지만, 입가의 끝에는 아주 작고 뾰족한 갈고리가 있다. 입꼬리가 아래로 깊게 쳐질수록 갈고리가 턱을 파고들어 귀에 가까워진다. 감정 열차의 시커먼 동력으로 갈고리는 끝을 모르고 팽창한다. 그러다 탁, 하고 귀의 전정기관에 갈고리가 채워지면 고막 바로 앞에 작은 셔터가 내려온다. 그 셔터에는 구멍이 나 있어서, 완벽하게 소리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만든다. 이때 듣고 싶은 말이라는 것은, 부드러운 관용의 언어가 아니다. 폭주하는 감정 열차가 갑자기 멈추지 않도록, 그의 원료가 될 만한 날카로운 말이다.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계된 전정기관을 중앙에서 끌어당기고 있으니, 사람은 균형을 잃는다. 울분으로 가득 찬 이의 얼굴이 비대칭으로 찌그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귀가 닫히고 난 다음부터 그 입에서 배설되는 모든 말은 거짓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상대방은 잘 들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의 귀에도 이미 갈고리가 걸렸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은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다행히 세상에는 넓은 혜안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김연수 작가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펴내면서 이런 아름다운 글을 썼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나는 이 글귀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소설은 아직 읽지도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결제조차 하지 않았지만) 공책에 천천히 따라 적어 보았다. 다가오는 봄에 읽을 책은 물으나 마나 이 <세계의 끝 여자친구>일 것이다. 절반은 반성하는 의미로, 절반은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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