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한 쪽의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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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소소한 결심을 하나 했다. 주방의 한 벽면을 독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신발장을 치우고 그 자리에 소파를 놓기로 한 것이다. 신발장은 본래 화분 등을 올려놓는 선반이었으나 우리 집에서는 무심하게 신발의 무덤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 위에 올려지는 신발은 반드시 계절 잠을 자야 했다. 신발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자리에는 고양이조차 별 관심이 없었다. 인간의 털, 고양이의 털들이 사이좋게 엉켜서 사이사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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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다른 건축과 친구들처럼 원목 나무를 떼다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실제로 스튜디오에 책상과 책장을 직접 디자인하고 목공소에서 작업한 애들이 있었다. 더 나아가 방학 동안 놀지 않고 집에 일본식 목조 다다미를 설치한 미치광이도 있었다. 무엇이든 열심인 이들을 볼 때면, 그들의 다부진 어깨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타입의 인간인가. 인간의 털과 고양이의 털의 향연을 보고 나서야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는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몸이 게으른 것과는 모순적으로 내 어깨에는 항상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결론은 ‘소파 손수 만들기’는 당시의 나에게 너무 큰 미션이라는 것이었다. 직접 만드는 것 대신에, 나는 미래의 소파를 규정하는 두 가지 큰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 새 소파는 50유로를 넘겨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새 소파는 요란한 색이 아니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난한 원칙이다. 이 원칙을 충족하는 소파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케아나 벼룩시장을 돌아다녔지만 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에 누군가가 낡은 소파 처분을 바란다는 공고물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동안 주방을 차지하던 거대한 선반은 갖다 버렸다. 휑하니 뒤에 숨어있던 하얀 벽이 드러났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3미터가량의 뽀얀 주방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인간과 고양이 털 뭉치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 앞에서는 먼지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마도 다른 가구의 등 뒤로 숨었을 것이다. 제 발로 진공청소기에 들어갔으면 땡큐고. (이 글을 쓸수록 죄책감이 심해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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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파를 찾아 헤매던 중, 적절한 대안을 우연히 놀러 간 어느 영화감독 부부의 집에서 발견했다. 가구 배치는 집주인의 성격을 닮는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분들의 가구는 하나같이 소담하게 놓여있었다. 곳곳에 초록 식물이 고개를 내민 곳에는 고양이가 파먹은 자리가 귀엽게 남아있었다. 어느 것 하나 자기주장이 센 물건이 없어서 머무르는 동안 아늑했다. (아, 캣타워를 제외하고. 고양이에 관련된 건 논외로 하자. 고양이님이 쓰시는 모든 물건은 옳다.) 그러다 발견한 게 거실 한 쪽에 있던 소파였다. 그분들은 팔레트를 두 개 쌓아올리고, 위에 매트리스를 얹어서 소파로 쓰고 있었다. 손님이 오시면 침대로도 쓸 수 있어 실용적이라고 했다. 푹신한 쿠션과 극세사 담요가 올려져 있어서, 고개를 파묻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아마도 중정 쪽으로 난 창문에서 비슷하게 떨어지는 햇빛이 고이는 자리라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팔레트는 한 판에 비싸 봐야 20유로. 엄격한 나의 두 가지 원칙도 가뿐히 통과했다.

좋아, 너로 정했어. 피카츄 잡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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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깻잎이의 표정. 그렇게 우리 집에도 팔레트 2겹의 소파가 설치되었고, 고양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미있게도 소파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자리의 순기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밖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몸에 두르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소파에 쏟아내는 것이다. 목도리, 장갑, 모자, 겉옷, 가방, 열쇠, 휴대폰 등등.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 소파를 처음 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현관에서 주방으로 들어오면 살포시 가방과 겉옷을 소파에 두는 것이다. 아마 초등학생이 우리 집에 온다면 실내화 가방을 휙 던질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신발 무덤이었던 곳이, 이제는 우리 집에 들어오는 인간의 꺼풀이 쌓이는 곳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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